드림엑스 뉴스 : [알쓸軍잡] 콜라는 원래 전투식량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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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軍잡] 콜라는 원래 전투식량이지 말입니다

아주경제신문 2018-02-15 00:16


[알쓸軍잡] 콜라는 원래 전투식량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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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굶주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전쟁 속 포화가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면서 신선한 식재료는 고사하고 끼니를 때울 먹거리조차 찾기 힘들어진 탓이죠. 민간인과 병사 모두 굶주림과 싸워야 합니다.
자연히 먹거리가 귀한 전쟁터에서 맛보다는 조리와 운반이 쉬워 당장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식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전투식량이 탄생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종류의 전투식량이 우리 식탁에 오르고 있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2차 세계대전 당시 콜라를 마시고 있는 미군들. 출처=The Coca-Cola Company]1. 두통약으로 만들어져 2차대전 이후 세계제일 음료 된 콜라
북극곰과 산타가 먼저 떠오르는 코카콜라는 1886년 미국에서 두통약으로 약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그럭저럭 유명한 음료수가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인데요.
미국이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참전하면서 코카콜라는 유럽을 비롯한 연합군이 주둔한 세계 어디에나 보급됐습니다. 당시 미군에게 코카콜라는 종교와 다름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병사들은 코카콜라 대령이라고 높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마치 미군이 세계에 코카콜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형국이었습니다. 장군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사령관은 1943년 6월 워싱턴에 코카콜라 300만 병을 보내달라는 긴급전보를 쳤던 일화로 유명합니다.[나찌 독일 판타 광고. 출처=Josh OConnor]콜라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1945) 총통마저 신도로 만들었습니다.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기 전인 1930년대 말 그는 침체 된 경기를 살리겠다며 많은 공장을 건설했는데 대부분이 콜라 생산시설이었습니다.
독일에서도 콜라가 대중적인 음료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참전하면서 독일 내 콜라 생산이 정지됐고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자 히틀러는 독일만의 코카콜라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환타입니다. 전쟁 말기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물자보급이 거의 중단됐고 그때그때 보유한 재료로 생산했습니다. 이에 환타는 콜라와 달리 여러 가지 맛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독일의 패전으로 환타는 단종됐다가 코카콜라에 흡수됐습니다.[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 출처=Jacques-Louis David]2. 자취생 영혼의 단짝 통조림 전쟁 양상마저 바꿔놓다
자취생의 영혼의 단짝이자 명절 선물세트로 인기가 좋은 통조림은 나폴레옹 1세(Napolon I, 1769~1821)가 이끄는 군대의 전투식량 개발 목적에서 비롯됐습니다. 1800년대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장악한 전술의 핵심은 기동력이었습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텐트도 없이 노천에서 나뭇잎을 덮고 잠을 잤을 정도로 보급품을 간소화했습니다. 병사들이 먹을 요리를 조리할 물자나 평화로운 식사시간은 이들에게 사치였습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허구한 날 굶주림에 시달리며 전투를 치러야 했습니다.
적의 총탄이 아닌 영양실조와 괴혈병 탓에 전사하는 병사의 수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휴대하기 간편하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식품 보존 기술개발에 1200프랑의 현상금을 걸었습니다.[니콜라 아페르가 만든 병조림(왼쪽)과 통조림 공장. 출처=.wikipedia]마침내 1810년 파리의 제과업자 니콜라 아페르가 통조림의 원조가 되는 최초의 병조림을 개발해 현상금을 받았습니다. 샴페인 병에 양배추브로콜리양파당근을 넣어서 코르크 마개로 막은 후 끓는 물에 살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음식을 따로 조리하지 않아 식사시간이 짧아졌고 병사들이 운반해야 하는 보급품의 무게도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나폴레옹 군의 진군 속도와 전투력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나폴레옹 군은 영국군에 연전연승을 이어갔습니다.
병조림으로 흥한 나폴레옹 군은 병조림 때문에 패배하는데요. 병조림이 빠른 진군 속도의 비결이라는 것을 알아챈 영국군은 병조림보다 가볍고 튼튼한 주석 깡통에 음식을 넣어 통조림을 만들어 냅니다. 영국군도 빠른 기동성을 확보하면서 나폴레옹 군은 결국 패하게 됩니다.[타바스코소스. 출처=McIlhenny Company]3. 병사 입맛은 물론 사기도 살린 타바스코
피자나 스파게티의 느끼함을 덜기 위해 타바스코소스는 필수인데요. 이 소스가 미국 남북전쟁 때문에 탄생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1861년 남부 출신 은행가였던 에드먼드 매킬러니는 루이지애나 에버리 섬의 돃가로 피난을 갔습니다.
매킬러니는 그곳에서 암염을 채취해 남부군에 보급되는 소금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다 전쟁에서 남군이 패배하면서 대금으로 받았던 군표가 모조리 휴짓조각으로 변했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히 망한 것이죠.
졸지에 무일푼 신세가 된 매킬러니는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처가 창고의 타바스코 고추와 암염에 식초 등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 소스를 부인이 쓰고 버린 향수병에 담아 팔았는데요. 이게 바로 타바스코소스의 시작입니다.[매킬러니사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병사에게 보낸 요리책. 타바스코소소를 동봉해서 보냈다. 출처=McIlhenny Company]타바스코소스는 굴에 뿌려 먹는 소스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군에 보급됐습니다. 사실 병사들은 매운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타바스코소스가 매일 비슷한 전투식량에 지친 입맛을 돋게 하는 별미로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여왕의 어머니이자 퀸 마더(Queen Mother)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 1900~2002)도 타바스코소스를 애용하면서 전쟁의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비슷한 이야기는 또 있는데요. 1991년 이라크전 당시에는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노만 슈워츠코프 장군이 매킬레니 회사로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이 매운 타바스코소스 덕분에 입맛을 되찾고 그로 인해 사기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성동규 기자 dongkuri@ajunews.com

성동규 dongkur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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